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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민

金濟民

미상 ~ 1919.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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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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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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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관련 사건

  • · 강서군 반석면 모락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출신이다. 1919년 3월 강서군(江西郡) 반석면(斑石面) 모락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사망하였다.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上四里)와 대동군(大同郡) 금제면(金祭面) 원장리(院場里) 사이에는 5일장인 모락장(사천시장[(沙川市場)]이라고 함)이 섰다. 두 지역은 각각 강서군과 대동군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장날에는 서로 왕래가 잦았다. 또한 장로교 소속 교회 네 곳도 서로 인접하여 활발히 교류하였다. 원장리에는 원장교회(院場敎會), 그로부터 남쪽 3km 지점 산수리(山水里)에는 산수리교회(山水里敎會), 상사리에는 반석교회(盤石敎會), 여기서 10km 떨어진 반석면 반육리(班六里)에는 사천교회(沙川敎會)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만세시위 계획은 반석교회 장로이며 사립 반석학교를 설립 운영하던 조진탁(曺振鐸) 장로가 3월 1일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거행된 독립선포식과 거리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몇 장의 독립선언서를 얻어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조진탁은 원장교회와 반석교회는 물론 산수교회와 사천교회까지 연합하여 원장리의 장날인 3월 4일 대대적 시위를 벌일 계획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사천교회는 모락장에서 별도의 시위를 벌이고자 준비하다가 헌병보조원에게 발각되어 주도자들이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3월 4일 오전 10시, 합성학교 운동장에서는 천여 명이 모여 독립선포식을 거행하였다. 원장교회 차병규(車炳奎) 장로의 기도로 시작하여 지석용 장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이어 임이걸(林利杰)이 독립선포식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40분간 연설하였다. 그리고 평화적 시위임을 선언하고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어 앞세우고 나팔수를 선두로 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원장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합성학교 교정으로 돌아올 때는 많은 군중이 뒤따랐다. 이 때 최능현(崔能賢)과 송현근(宋賢根)이 모락장 시위가 사전에 발각되어 여러 명의 동지가 잡혀갔으니 헌병대 유치장에 갇힌 이들 동지를 구하러 가자고 호소하였다. 시위 군중은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청년이 선두에 서고 노인과 여성들이 뒤따르며 헌병대가 있는 모락장으로 향하였다. 행진을 계속하면서 시위 군중은 2천을 넘어섰다. 그런데 모락장에 거의 도착하여 언덕길을 넘으려 하자, 사천헌병분견소장인 사토(佐藤實太郞)와 헌병보조원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면서 격분한 시위 군중은 돌을 던지고 맨주먹으로 저항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사토는 분견소에 몸을 숨기고 계속 총을 쏘았고 보조원들은 도망을 갔다. 시위 군중들이 분견소에 불을 지르자 사토를 비롯한 헌병보조원 2명도 사망하였다. 이 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헌병보조원 박요섭(朴堯燮)을 쫓아가 응징하였다. 이 날 시위로 붙잡혀 평양경찰서에서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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