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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金正哲

1900. 10. 1 ~ 196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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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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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대전(大田)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대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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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10월 1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산내면(山內面) 삼괴리(三槐里, 현 대전광역시 동구 산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전개된 대전면(大田面) 대전시장(大田市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이었다. 이때 독립선언서 등의 문건을 확보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산내면사무소 등지에서 시위에 사용할 유인물을 비밀리에 인쇄하였다. 3월 15~16일 무렵 평소 알고 지내던 대전읍(大田邑) 김창규(金昌圭)의 집을 방문하여, 전국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데 대전면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하였다. 이어서 김창규에게 3월 27일 대전 장날 다수의 주민들이 모일때 만세시위를 하자고 촉구하며, 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국민회보와 독립신문 등 약 300매의 문건을 전달하였다. 김창규는 이 유인물을 보관하다가 만세시위 당일인 3월 27일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오후 3시가 되어 이들은 대전시장으로 가서, 먼저 김창규가 모인 군중을 향해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대전 지역만 빠져있다고 지적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완수(金完洙) 등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군중에게 배포하였고, 윤명화는 각 상점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이에 200여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며 오후 5시경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대전시장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도 인물 5명을 체포하였으나, 시위는 이튿날 오후에도 계속되었다. 만세운동 직후 붙잡혀 1919년 7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 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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