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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姜聖鳳

1873. 11. 29 ~ 195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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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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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靑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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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운문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청도군(靑道郡) 운문면(雲門面) 신원동(新院洞)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청도 운문면 만세 시위는 운문면 신원동에 사는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 등이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만세 시위를 목도한 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3월 10일 김종태와 김상구 등은 신원동에 자리한 문명학교(文明學校) 교장 김우곤(金禹坤)의 집에 모여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1919년 3월 15일에는 신원동의 박창기(朴昌淇)의 집에 손기현(孫琪鉉), 김재화(金在華) 등이 모여 ‘시기를 놓치지 말고 삼천리 강토를 찾아야 한다’라는 내용의 동포 형제에게 고하는 격문 20여 장을 작성하여 운문면의 방음동(芳音洞)·대천동(大川洞)·순지동(蓴池洞)·오진동(五津洞)의 시장 등 여러 곳에 부착하였다. 3월 17일 밤에는 운문면 신원동 문명학교에서 다시 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일본 유학생, 대구고등보통학교 재학생 등 학생 층의 참여로 확대되었다. 3월 18일 만세 시위는 운문면 면사무소 앞에 이어 방음동·오율동을 거쳐 신원동까지 이어졌고, 그날 밤에는 운문면 공암동(孔岩洞) 강정(江亭)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9일 경찰은 운문면에서 시위 관련자 체포에 나섰다. 3월 19일 밤 청도경찰서 소속 일본인 순사 2명과 한국인 순사보 5명이 신원동에 나타나 김상구를 찾아 나섰다. 김상구를 찾지 못하고 그의 어머니를 데려가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이 반발하며 저항하였다. 곧 그 모습을 본 주민 김의택(金義澤)이 순사를 밀치며 “만세를 부르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라고 항의하며 저항하였다. 이때 김병준(金秉濬) 등과 함께 마을 주민 40여 명을 모아 일본 순사들을 에워싸고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이어 동민 300여 명이 모여 들자 순사들은 권총을 발사하며 도망쳤다. 1919년 3월 20일 다시 출동한 헌병 3명과 경찰 5명에 의해 만세 운동 관련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대구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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