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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익

金正翼

1891. 5. 16 ~ 193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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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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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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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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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891년 5월 1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오대리(梧垈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9년 안동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 안동면(安東面)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 만세시위에 이르기까지 안동에서는 모두 14회에 걸쳐 10,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3월 17일부터 23일까지가 절정기였다. 안동군 19개 면 중에서 11개 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안동의 만세시위는 3월 18일 낮까지 비교적 온건한 시위 양상을 보였으나, 이날 밤에 일어난 안동면의 두 번째 시위부터 공격적인 시위 양상이 나타났다. 이후 안동의 만세시위 과정에서 면사무소 5곳과 주재소 3곳이 부서졌다. 이처럼 만세운동의 열기가 고초되어갈 때 임하면 오대동에 사는 마을 주민들과 뜻을 모아 시위 준비에 나섰다. 거사일은 길안면에 있는 천지시장(泉旨市場) 장날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오대동은 행정구역으로는 임하면에 속하지만, 거리로는 길안면이 더 가까웠다. 그래서 거사 장소로 길안면 천지시장을 선정한 것이었다. 1919년 3월 21일 김정연·손영학과 아침 일찍 천지시장에 가서 당목(唐木) 천을 사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만들었다. 오후 5시쯤 천지시장 한 가운데서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 오후 6시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김정연·손영학과 함께 면사무소로 들어가려 하자 스기모토(杉本) 순사가 가로막았고 이에 시위대와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출입문을 부수었다. 시위대와 다시 길안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졌다. 3월 21일에는 길안면만이 아니라 임동면(臨東面)과 임하면에서도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서류와 비품을 파기하는 투쟁이 이어졌다. 3월 22일 오후에 다시 수백 명의 시위대가 길안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이후 며칠 동안 검거 선풍이 있었는데, 3월 24일에는 손두원(孫斗源)이, 3월 26일에는 김필락(金珌洛)이 순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김정연·손영학과 함께 피신하여 의성군(義城郡) 의성면(義城面)에 있는 박재하(朴在夏)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갈 여비를 마련하던 중 1920년 2월 11일 붙잡혔다. 1920년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강도예비로 징역 5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그 해 6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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