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金正勖1883. 1. 12 ~ 1947. 3.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울산군 언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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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83년 1월 1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남면(上南面) 명촌리(鳴村里)(현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울산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울산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난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2일 언양읍(彦陽邑) 장날 시위였다. 천도교 울산교구 교도와 인근 지역의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고종(高宗)의 인산일에 참석했던 천도교 울산교구장 김교경(金敎慶)이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리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자, 울산교구는 7인의 교구 중진회의를 개최하여 4월 2일 언양 장날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밤새워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런 가운데 언양의 일제 경찰은 예비검속령을 발표하고, 주도 인물 몇 명을 주재소로 끌고 갔지만, 곧 풀려나서 계획에는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 거사 당일인 4월 2일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언양 시장으로 나갔다. 시위 준비에 나선 청년들이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여러 뭉치로 거적에 싸서 시장에 운반해두고, 그 날 11시에 만세운동이 있을 것이라고 시장을 다니며 군중에게 알렸다. 오전 11시경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들리고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깃발이 높이 게양되자 시위 군중은 이에 호응해 일제히 만세를 불렀고, 청년들은 미리 준비했던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읍내시장(邑內市場), 남부리(南部里) 도로를 행진하였다. 일제 경찰이 공포를 쏘며 선두에 있던 주도 인물 몇 명을 체포하여 언양주재소로 연행하자 시위 군중은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쇄도하여 투석으로 맞섰다. 일제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격노한 군중은 총기를 탈취하려 육박전을 벌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1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시위 현장에서 붙잡혀, 이 해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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