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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廷奭

廷奭

186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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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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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廷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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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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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수안군 수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율계면(栗界面) 금촌리(金村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9세로, 186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전정석(全廷奭)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황해도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수안군에는 1910년 천도교 교구가 설치되었다. 곡산군(谷山郡) 등과 함께 황해도 천도교의 중심지역으로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은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황해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19년 3월 1일 저녁 수안에 도착한 이경섭은 수안교구 평의원이자 공선원(共宣員)인 이종숙(李宗淑)의 집에서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를 비롯하여 김영만(金永萬)·홍석정(洪錫禎)·홍순걸(洪淳杰) 등 전 교구장, 그리고 공선원 나찬홍(羅燦洪)과 최용식(崔鎔植), 전교사(傳敎師) 한청일(韓淸一) 등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이 모임에서 이경섭은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전달하면서 수안에서도 서울처럼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이종일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3월 2일 수안교구 교구실에 모인 천도교 지도자들은 3월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과 독립을 선언했으므로 헌병분대를 인도(引渡) 받을 것, 그 실행 방법은 한청일과 홍석정이 담당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거사 전 수안헌병 분대에 탐지되어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부 11명이 연행되었다. 이 때 붙잡히지 않은 이영철, 한청일, 홍석정 등은 당일 밤 수안지역의 천도교 중심인물들에게 예정과 같이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알렸다. 3월 3일 오전 6시경 수안교구에 집결한 130~140명의 시위대는 태극기와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수안금융조합 사무소를 거쳐 수안헌병분대 앞마당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우리는 독립하였으며, 자유와 공화정치가 대세라는 사실을 주창하는 한편, 수안헌병 분대를 인도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수안헌병 분대장이 서울 본부의 명령을 받아야 하니 일단 물러갈 것을 요청하였고, 시위대는 대표자를 남기고 교구로 돌아 왔다. 이것이 수안읍내에서 3월 3일 전개된 1차 시위였다. 같은날 오전 11시경과 오후 1시경 각각 100여 명과 150여 명의 시위대가 헌병분대 앞에서 헌병 분대의 인도를 다시 요구하였으나, 헌병대는 이를 거부하며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3월 3일 전개된 수안읍 2차, 3차 시위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한청일과 홍석정 등 9명이 사망하였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수안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독립선언서를 읽고 그 내용에 공감하는 한편, 독립선언서를 자신이 거주하는 금촌리 일원 주민들이 돌려보도록 하였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자 수안교구로 가던 도중 경찰이 해산을 종용하여 귀가하였지만, 이후 붙잡혔다. 일자 미상일에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불복, 항소하여 1919년 5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다시 “현재 조선은 병합 이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자유 활동 없이 압제 아래 어두운 생활을 어언 10년이나 하였다”고 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백성된 책무로서 보안법 위반이나 치안 방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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