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載說
金載1880. 11. 3 ~ 1967. 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의주군 광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0년 11월 3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가산면(加山面) 방산동(方山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의주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의주에서는 1919년 3월 1일에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유여대(劉如大) 목사를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그는 서울 명월관에서 열린 3월 1일의 독립선포식에 참석하지 않고 의주에 남아 평북 지역에서의 만세시위 조직에 힘썼다. 3월 1일 오후 2시 기독교인의 주도로 양실학교(養實學校) 운동장에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벌였다. 의주면에서는 3월 2일 최동오(崔東旿)·최안국(崔安國) 등이 이끄는 천도교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어서 3월 3일에는 1,200여 명의 시위대가 만세운동을 벌이며, 관공서로 몰려가 즉시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3월 4일과 6일에는 양실학교 학생 6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의주면에서 연이어 일어난 만세시위는 의주군 내 여러 면으로 확산되었다. 3월 15일 오후 2시경 광평면(廣坪面)에 있는 조선총독부 광무과출장소 부근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에 경찰과 헌병이 발포하자 시위대와 함께 총기를 빼앗고 순사보 1명과 헌병보조원 1명을 붙잡았다가 경찰과 헌병 측에 넘겨주었다. 이후 헌병보조원에게 폭행을 가하여 중상을 입혔다는 이유로 붙잡혀 일자 미상일에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5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되어 다시 상고하였다. 같은 해 7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5년으로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