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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長壽

長壽

1887. 5. 20 ~ 195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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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長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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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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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7년 5월 20일에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동리(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이며, 호는 유암(裕岩)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다가, 그 해 4월 4, 5일 하상면 병영리(兵營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병영리는 조선시대에 경상좌도(慶尙左道) 병마절도사영 (兵馬節度使營)이 있던 곳으로 청년들의 애국적 상무정신이 강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성장하여 일찍부터 항일의식을 지니고 비밀결사 병영청년회(兵營靑年會) 간부로 활동하였다. 병영리에는 1906년 사립 일신학교(日新學校)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 출신 청년들이 병영청년회의 주요 회원이었고, 대부분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유학하던 지역 청년들은 병영청년회 간부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였다. 이를 전해 듣고 이현우(李鉉禹)·이문조(李文祚)·이종욱(李鍾旭)·박영하(朴永夏)·이종근(李鐘根)·양석룡(楊錫龍) 등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논의하여4월 4일을 거사일을 정하였다. 이들은 거사의 철저한 결행을 위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깨물어 ‘결사보국(決死報國)’이라는 혈서를 함께 썼다.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와 ‘구대한국독립만세(舊大韓國獨立萬歲)’, ‘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만들었다. 거사일인 4월 4일 오전 9시경 청년회 회원과 일신학교 학생들이 일신학교 교정으로 집결하였다. 축구 경기를 위장하여 모인 이들은 경기 시작을 알리기 위해 축구공을 높이 차올리는 것을 신호로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들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리(西里)·동리(東里)·남외리(南外里)·산전리(山田里)를 돌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병영경찰주재소의 요청으로 울산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가 급히 달려와 주도 인물을 검거하며 총검으로 진압하여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몸을 피하여 이날 저녁 청년회 간부들과 함께 이튿날 다시 거사하기로 계획하고 다른 동지들에게 연락하였다. 1919년 4월 5일 이른 아침 동지들과 만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고 오후 3시를 기해 일신학교에 모여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인근 지역을 행진하자 군중은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 군중과 함께 하상면의 경찰관 주재소를 에워싸고 전날에 검거한 주도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울산에서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가 무차별 사격을 가함으로써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동지들과 함께 기미계(己未契)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결의하고 해마다 사망자의 추모제를 비밀리에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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