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룡
金子龍1893. 6. 3 ~ 1954.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의성군 의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3년 6월 3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조문면(召文面) 구련동(龜蓮洞, 현 금성면 구련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했고 대리동(大里洞)교회 교인이었다. 의성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2일 비안면(比安面)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23일 동안 총 7개 면에서 21차례 일어났다. 조문면 대리동교회의 교인들이 시위를 계획하고, 안평면의 석탑교회와 비봉교회 교인들이 함께 운동을 이끄는 등 주변 지역의 교회가 가세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리동교회 영수였던 박낙현(朴洛鉉)은 1919년 2월에 대구 성경학교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였다. 그는 귀향한 후 3월 12일과 13일에 걸쳐 같은 교회의 집사였던 윤용구(尹龍九), 교인 윤영주(尹營柱)·오상룡(吳相龍)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의성장날인 3월 18일을 거사일로 잡고, 태극기와 대한독립이 적힌 기(旗)를 미리 제작하는 등 시위 준비에 나섰다. 시위 당일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로 인해 시장이 폐쇄되었다. 이로 인해 당초 만세운동에 합류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의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시장에 잠입한 박낙현은 미리 준비한 깃발을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돌아다니며 만세시위를 독려하였다. 이를 보고 주민들과 함께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 해 4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동일 형량을 받았다. 이에 다시 “조선 백성으로서 조선독립이 기뻐 축하의 만세를 불렀을 뿐”이라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