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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선

金日先

1895. 11. 17 ~ 197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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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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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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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안동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95년 11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사월리(沙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일선(金日宣), 김노경(金魯璟)을 사용하였다. 1919년 안동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는 임동면(臨東面)·임하면(臨河面)·길안면(吉安面)·일직면(一直面)에서 만세시위가 동시 다발로 일어났다. 임동면 시위는 3월 3일에 열린 고종 인산에 참석했던 류동시(柳東蓍)가 돌아오면서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류동시는 임동면 수곡동(水谷洞)에 있는 협동학교(協東學校)의 류동태(柳東泰)와 이균호(李均鎬)·류연성(柳淵成)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5일 편항시장(鞭巷市場) 공동 타작장에서 안동지역 인사들은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약속하였다. 3월 21일 오후 1시가 지나 편항시장에서 먼저 기독교인 1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경 류연성을 비롯한 10여 명의 주도자들이 시장 가운데 등장하였다. 류연성의 연설이 끝난 후 먼저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이 열렬히 호응하였다. 이때 우치다(內田甚助) 순사가 이를 제지하다가 편항경찰관주재소(鞭巷警察官駐在所)로 몸을 피하자, 500여 명의 시위대도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 무기를 빼앗아 우물에 버리고 서류들을 파기했으며,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오후 5시에는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곧바로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순사부장 1명,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는데, 3월 21일 임동면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다음 날인 3월 22일 오후 2시 이웃에 있는 임북면(臨北面) 사월동(沙月洞)으로 건너갔다. 임북면 사람들과 합세하여 면사무소에 몰려가 사무실과 숙직실을 모두 부순 후, 오후 5시쯤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오히려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으로 늘어난 형량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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