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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一南

一南

1888. 7. 21 ~ 1950. 2. 1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一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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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금산군 금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8년 7월 21일 전라북도(현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중도리 (中島里)에서 태어났다. 금산면 만세시위 당시 음식점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23일 금산군 금산장터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금산 지역에서도 3월 들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던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22일 밤 금산면 상옥리(上玉里) 주민 김용술(金用述)은 자신의 집에서 임승환(任勝煥)과 함께 금산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빌려와 사람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킬 목적으로 「금산경고(錦山警告)」 라는 제목의 문서 150여 장을 만들었다. 금산면 읍내 장날인 23일 김용술·임승환·구호열(具鎬烈) 등은 시장으로 가서 인쇄물을 배포하고 오후 2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한 20~30여 명의 장꾼이 이들과 함께 ‘대한국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였다. 그날 밤 금산면 중도리 같은 마을 주민인 김대수(金大守)와 함께 이날 밤에도 시위가 진행될 것인지 여부를 살피다가 여전히 시위운동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감지하고 읍내로 가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10시 금산면 남산에 모여 있는 약 30여 명의 시위 군중 대열에 합세해 앞장서서 양손을 들고 ‘대한국 독립만세’를 연호하였고, 금산시장과 금산면의 중심 지역을 행진하였다. 이에 많은 주민들이 호응해 만세시위가 밤에도 크게 전개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6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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