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金仁鎬187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중화군 상원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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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면(祥原面) 덕령리(德嶺里) 출신이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판결문 기록에 따르면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중화군 상원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평안남도 남부에 위치한 중화군은 동쪽은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서쪽은 용강군(龍岡郡)·강서군(江西郡), 남쪽은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북쪽은 강동군(江東郡)·대동군(大同郡)과 접하고 있다. 1919년 무렵 서쪽 평야지대에는 기독교인이 많이 살았고, 동쪽 지역에는 천도교인이 주로 살았다. 중화군 만세시위는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신읍리는 중화면(中和面)과 평양(平壤)에서 각각 3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3월 1일 평양에서 만세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이 곧바로 알려지면서, 3월 2일에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행진하며 상원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철거를 요구하고, 무기를 빼앗고 그 자리에 있던 중화경찰서장을 납치하였다. 평양 경무부(警務部)는 곧바로 경찰 2명과 일본군 12명을 급파하였다. 경찰과 군인들은 시위대가 획득한 총기와 탄약을 도로 빼앗았고, 39명을 체포하였다. 3월 3일 오후 3시에는 신읍리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벌였다. 50여 명의 시위대는 주재소로 몰려가 전날 끌려간 사람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경찰과 일본군 역시 전날 시위대에 피랍된 경찰서장을 탈환하고자 긴장하고 있었기에 양측 간에 충돌이 발생하면서 사상자가 생겨났다. 오후 4시경에는 천도교인들이 시내를 행진하다가 일본군과 충돌하여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틀간에 걸친 상원면의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한 것은 천명(天命)을 그르치고 인도(人道)를 그르치며 만방(萬邦)의 평화를 해치는 것”이라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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