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益輝
益輝1885. 11. 29 ~ 1959. 5.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1)
관련 사건
- · 의성군 안평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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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1) 1885년 11월 29일 경성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대사동(大司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익하(金益夏)이다. 1919년 의성군 안평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 안평면에서는 1919년 3월 15일에 처음 만세시위가 일어난 후 3월 19일까지 매일 시위가 이어졌다. 대사동교회의 교인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가운데, 주민들이 가세하였다. 안평면의 만세시위는 대사동 우리골(尤利谷)에서 준비되었다. 김옥돈(金玉頓)·이종출(李鍾出)·이화실(李華實) 등이 3월 11일과 12일에 사전에 논의하여 3월 15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15일 60~70명에 이르는 교인 및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저녁 7시경부터 밤 10시까지 마을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16일에는 50~60명의 교인과 주민들이 밤 8시경에 모여 만세를 불렀으며, 이후 시위대는 주재소가 위치한 창길동(倉吉洞)까지 행진하였다. 3월 17일에는 400여 명의 주민들이 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18일에도 약 300명의 대사동 주민들이 우리골에서부터 마전(馬轉)·기도(箕道)·창길·박곡(朴谷)·괴산동(槐山洞) 등 안평면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러한 시위들 중 이화실로부터 만세운동을 하면 조선이 독립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3월 16일의 시위에 처음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3월 19일은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里院), (桃李院)시장의 장날이었다. 김옥돈은 이날 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규합하여 의성경찰서 진입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당일 아침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결과, 대략 700명이 모였다. 시위대가 도리원시장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한 뒤에는 1,000명까지 늘어났다. 경찰의 탄압으로 군중이 흩어짐에 따라 의성경찰서 진입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경찰은 이튿날부터 시위 주도자를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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