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시
金益時1885. 9. 12 ~ 1943. 6.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칠곡군 약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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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5년 9월 1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황상동(黃桑洞, 현 구미시 황상동)에서 태어났다. 1912년 만주 륭징(龍井)으로 이주했다가 1918년에 귀국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판결문」 에는 10년 전부터 약목면(若木面) 복성동(福星洞)에 살았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지는 않다. 칠곡군의 만세시위는 인동면 진평동(眞坪洞)·약목면 평복동(平福洞)·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석적면 성곡동(城谷洞) 등 네 곳에서 모두 여덟 차례 일어났다. 그리고 약목면에서도 만세시위 계획이 있었지만, 주도 인물들이 사전에 검거됨에 따라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여기에 가담하여 약목면 약목시장의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저녁 8시경에 안도수(安道秀)와 같이 동생인 김익주(金益周)의 집에서 숭오동(崇烏洞)과 복성동의 기독교 신자들을 모아 약목시장의 장날인 3월 14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안도수는 북삼면(北三面)의 신자만으로는 만세운동을 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제안하였고, 이를 받아들였다. 3월 12일 복성동의 최전화(崔塡和) 집에서 박상하(朴相夏)·한종호(韓鍾浩)·배일언(裵日彦) 등을 만나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다. 장날의 시위에 맞춰 여러 가지 준비에 들어갔으나 결국 경찰에 발각되어 사전에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4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과 조선형사령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6월로 감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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