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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利源

源

1875. 12. 13 ~ 195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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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利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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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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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의주군 수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5년 12월 13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비현면(枇峴面) 당후리(堂後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나이는 41세로, 여인숙업(旅人宿業)에 종사하고 있다가 4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친 의주군 수진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화동(梨花洞) 주민들 400여 명과 함께 수진면(水鎭面) 면사무소가 위치한 운천동(雲川洞)으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대는 거리행진을 하면서 일본 헌병과 관련된 기관을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함께 운천동 동장 주계주(朱桂拄)의 자택과 도축장을 불태우고 일본 헌병의 제복을 소각하였다. 4월 2일 오후가 되자 시위대는 더 늘어났다. 기독교인, 천도교인, 지역주민이 합세하자 시위대는 2,000명이나 되었다. 이들과 함께 수진면사무소로 가서 조선 독립에 관한 연설을 듣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점령하였다. 헌병대가 출동하였고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 해산을 위해 총기를 휘두르며 발포하였고, 시위대 측에서 2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헌병대의 시위 해산과정에서 붙잡힌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면서 이른바 소요, 방화, 살인미수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4월 1일 조선독립을 외치고자 수진면사무소에 갔던 사실은 인정하나 주계주를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고 또한 “조선독립을 외친 것은 정정당당한 일이므로 보안법 위반 혐의에 불복한다”며 상고하였다. 하지만 그 해 9월 25일 고등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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