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利根
金根1886. 6. 11 ~ 1965. 4.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의주군 비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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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86년 6월 11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비현면(枇峴面) 체마동(替馬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의주군 비현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주에서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유여대(劉如大) 목사를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유여대는 서울 태화관(泰和館)에서 열린 3월 1일의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의주에 남아 평북 지역에서의 만세시위 조직에 힘썼다. 정명채(鄭明采)·김두칠(金斗七)을 비롯한 20여 명과 함께 양실학교(養實學校)에 모여 서울과 똑같이 3월 1일 오후 2시에 양실학교 운동장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계획을 세웠다. 3월 1일 오후 2시 양실학교 운동장에는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였다.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가(獨立歌)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3월 2일에 다시 의주군 의주면(義州面)에서 일어난 시위운동에는 최동오(崔東旿)·최안국(崔安國) 등이 이끄는 천도교인들도 가세하였다. 고종(高宗) 인산일(因山日)인 3월 3일에도 의주면에서는 1,200여 명의 시위대가 시내를 돌며 만세시위를 벌이고 관공서로 몰려가 즉시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3월 4일에는 양실학교 학생 6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내 곳곳에서도 시위대가 출몰하였으며, 상점들은 일제히 철시하였다. 양실학교 학생들은 3월 6일 오전 10시에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만세운동 초기에 의주면에서 연일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는 의주군 내 여러 면으로 확산되어갔다. 3월 7일 의주군 비현면 체마동에서는 장날을 맞아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1,000명이 집결한 가운데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이 날 시위로 11명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으나, 비현면에서는 4월 2일에도 비현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 약 3,000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1919년 9월 1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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