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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진

金應鎭

1890. 7. 7 ~ 193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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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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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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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0년 7월 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천전리(川前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선성(宣城)이다. 1919년 3월 당시 30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안동군 예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예안면의 만세시위는 면장과 면서기의 주도하에 안동 최초의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1일 밤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이 면서기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여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거사 날짜를 예안시장의 장날인 3월 17일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군중 동원을 준비하는 동시에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예안면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趙修仁)도 유림들과 함께 3월 17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정하였다. 기독교계에서도 예안교회(禮安敎會) 신자들을 중심으로 3월 17일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7일 면사무소 직원, 기독교와 유림 지도자들이 준비한 예안면 만세시위는 오후 3시 30분 군중들이 면사무소 뒤편에 일왕(日王)의 즉위를 기념하여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넘어뜨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작되었다. 이 만세 소리에 따라 일제히 시위대가 시장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를 목격하고 시위대에 합류하여 양자인 김동택(金東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들이 예안주재소로 몰려가자 경찰과 군인이 시위에 앞장서던 15명을 붙잡았다. 시위대는 주재소 앞에서 구금자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였다. 1,500여 명을 넘어선 시위군중은 주재소를 둘러싸고 돌과 기왓장을 던졌고 오후 7시에는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날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 해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그대로 선고되었다. 다시 불복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해서 독립이 될 수는 없으나 점차 효과가 있음은 천심(天心)에 의한 것이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처벌 받는 것은 불복한다”고 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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