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식
金應植1875. 11. 3 ~ 1944. 9.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군 장안면
- · 우정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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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5년 11월 3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水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에 일어난 수원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 시위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爀) 등이 장안면 석포리(石浦里) 이장 차병한(車炳漢) 등과 계획하였다. 이들은 당일 오전 10시 장안면 어은리(漁隱里)의 장안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이때 마을 소사 이원준(李元俊)으로부터 몽둥이를 들고 면사무소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몽둥이 대신 양산 자루를 들고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로 이동해 그곳을 부수고 서류와 집기를 끄집어냈다. 또한 면사무소 부근인 쌍봉산(雙峯山)에 올라가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다른 지역에서 몰려온 군중이 합세하면서 1천여 명의 시위대는 오후 3시 우정면사무소로 쇄도하여 파괴하고 서류를 불태운 후, 한각리(閑角里)를 거쳐 화수리(花樹里)로 향하였다. 오후 5시에 이르러서는 몽둥이를 들고 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는 일에 가담하였다. 이때 시위대 일부가 주재소 뒤에 불을 피우자 일본인 순사가 총을 쏘면서 도망쳐 나왔다. 시위대는 주재소 동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까지 추격해서 돌과 몽둥이로 순사를 처단하였다. 또한 주재소를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이 사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19년 4월 15일 수원경찰서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방화 등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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