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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應星

應星

1890. 2. 7 ~ 196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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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應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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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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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2월 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 현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덕우(德宇), 호는 청헌(淸軒)이다. 1919년 당시 30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안동군 임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안동면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어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 만세시위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0,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안동군 19개면 중에서 11개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면들은 장이 서지 않는 작은 곳이었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3월 18일 낮까지 비교적 온건한 시위 양상을 보였으나, 그 날 밤에 일어난 두 번째 시위부터 공격적인 시위 양상으로 나타났다. 안동 최초의 대규모 만세시위는 면장과 면서기들의 주도하에 예안면(禮安面)에서 3월 17일에 일어났다. 3월 18일에는 안동면에서 기독교계와 유림계가 함께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나 새벽까지 2,5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곧바로 안동 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1919년 3월 21일에는 임동면·임하면(臨河面)·길안면(吉安面)·일직면(一直面)에서 만세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고종 장례식에 참석했던 류동시(柳東蓍)가 돌아오면서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이어 3월 15일 편항시장(鞭巷市場) 공동 타작장에서 유연성(柳淵成)과 유동수(柳東洙), 유교희(柳敎熙) 등의 주도자들이 모여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약속하였다. 3월 21일 오후 1시 편항시장에서 기독교인 10여 명이 먼저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오후 2시 주도자들이 나타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유연성이 군중을 향해 만세를 불러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5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편항경찰관주재소로 이동했고, 주재소로 들어가 순사와 순사보의 무기를 빼앗고 이들을 구타하였다. 이어 주재소 사무실과 숙사 건물을 파괴하고, 서류와 집기류를 파기하였다. 오후 5시, 시위대와 함께 임동면사무소로 이동해 만세를 부르고,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순사부장 1명,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그대로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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