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金潤泰187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강계군 강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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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어뢰면(漁雷面) 천성동(天成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8일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면(江界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강계는 교통이 불편하여 서울 등 각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 소식이 늦게 전해졌다. 영실학교(英實學校) 교사 김경하(金京河)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3월 20일경 동료 교사이던 정준(鄭儁), 강계읍교회 장로이자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회계를 맡은 한봉민(韓奉珉)과 만세시위를 도모하였다. 세 사람은 서울에서 기독교와 천도교가 제휴한 것을 따르고자 천도교 강계대교구에 의사를 타진하여 동의를 얻어냈다. 여기에 지역 유지들까지 합하여 모두 21명이 만세시위 준비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3월 24일 영실학교에 모여 거사에서 책임지고 희생할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서명과 날인한 연판장을 작성하였다. 3월 25일에 다시 회의를 열어 장날인 4월 8일 오전 11시에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8일 오전 11시에 남장대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울리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집집마다 돌렸다. 이준겸의 집 앞 광장에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행진이 시작되었다. 시위대가 남문(南門)에서 행진해서 북문(北門)에 이르자 수비대가 총을 쏘았다. 21명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인 정준과 천도교인인 김병찬(金秉賛)과 상인인 손주송(孫周松), 전도사인 인국원(印國元)의 부인으로 임신 8개월의 몸이던 한 씨(韓氏)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6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소요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러자 다시 “속국은 혼몽(昏懜)에서 깨어나고 강대국이 속국에 독립권을 부여하는 민족자결의 시대를 맞아 조선 민족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자유 국가를 요구함에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연한 의리로써 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해서 징역형을 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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