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允培
允培186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횡성군 횡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4년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갑천면(甲川面) 매일리(梅日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횡성군 횡성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횡성에서는 천도교 횡성대교구가 나서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준비하였다. 횡성대교구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장도훈(張道勳)을 천도교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하여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이동구(李東求)에게 보냈다. 장도훈은 독립선언서 40매를 전달받고 태극기 20기를 구하여 돌아왔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는 3월 14일 횡성면(橫城面) 영영포리(永永浦里)에 있는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의 집에서 천도교 횡성대교구장 최종하(崔宗河)의 지휘 아래 각지로 배포되었다. 천도교가 주도하는 만세시위는 3월 말 장날을 이용하여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3월 27일 횡성면 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천도교인들이 나서 모든 상점의 문을 닫도록 하고 시위 군중 3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자마자 곧바로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하였다. 이날 천도교인 8명을 포함하여 12명이 붙잡혔다.. 천도교인들은 다음 장날인 4월 1일에 더욱 조직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번에는 횡성감리교회(橫城監理敎會)에 다니는 정해경(鄭海景)과 횡성보통학교(橫城普通學校) 졸업생 중심으로 조직된 횡성청년회(橫城靑年會)의 윤태환(尹泰煥)이 힘을 보탰다. 천도교인들은 3월 27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천도교인 동원에 만전을 기하고 횡성면 소재지로 출입하는 도로에 천도교인을 배치하며 마을에서는 천도교인이 장꾼을 인솔하도록 하였다. 장터에서는 상점을 폐쇄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관청과 경찰도 낌새를 채고 긴장하여 만일에 대비하였다. 횡성군수 심상준(沈相俊)과 횡성면장 김석환(金錫煥)은 주요한 서류를 감추고 관리들에게 비상대기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오전부터 각지로부터 시위대가 속속 모여들었다.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어 1,300명이 넘는 군중이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정해경과 천도교인 김성서(金聖西)가 앞장서 만세를 부르자 이에 호응하여 조상렬(趙常烈)·김윤신(金允信)·전성수(全聖洙) 등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끌었다. 시위대가 몽둥이나 장작을 들고 군청 건물을 비롯한 관공서와 문을 닫지 않은 상점 등을 부수자, 놀란 관리들은 도망갔다. 헌병인 고지마(小島)가 말을 타고 거리로 나타나자 시위 군중이 몰려들면서 최동수(崔東壽)가 끌어내려 밟고 때렸다. 이때 총소리가 울리면서 구타는 멈추었으나, 만세시위는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시위대가 다시 헌병분견소로 몰려가자 헌병들이 총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5명이 사망하였다. 4월 1일 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19년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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