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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金元培

1897. 11. 17 ~ 1939. 2.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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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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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경북 김천군 김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1월 17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김천면(金泉面) 본정(本町, 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김원득(金元得)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구두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초순 김천 황금동 장로교회 조수 김충한(金忠漢)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김천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귀향한 후 3월 8일 대구학생단의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계성학교 생도 김수길(金秀吉)도 김천에서 거사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그날 밤 황금동교회로 찾아왔다. 김충한은 김수길의 계획을 수용하고, 함께 있던 장로 최용수과 소사(小舍) 한명수도 이에 호응하여 동참을 결의하였다. 3월 9일 밤, 김충한과 김수길 그리고 최용수와 한명수는 황금동교회 예비모임에 주남태, 박태안, 차경곤 등을 동참케 하여 함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협의하고, 김천면 장날인 3월 11일 오후 3시 용두동 감천교(甘川橋)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는 동시에 격문을 배포하고, 태극기를 선두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김천 시내를 행진하는 것을 시위계획으로 수립하였다. 그날 밤 주남태와 함께 종이 태극기 50여 개를 만들어 황금동 한상태(韓相泰)의 집으로 가서,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 한정이(韓定履), 석동준(石東俊), 박희철(朴喜徹) 등에게 나누어 주면서 거사에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도록 하였다. 이에 석동준은 11일 태극기 16개를 들고 김천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김종호 등에게 나누어 주면서 11일 오후 3시 만세시위에 참가하도록 다짐을 받았다. 그런데 3월 11일 거사 직전 격문을 등사한 등사기를 반환하는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고, 황금동교회에서 시위를 준비하고 있던 중심 인물 4명이 체포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3월 11일 계획되었던 만세시위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 일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 1919년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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