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完奉
完奉1899. 6. 12 ~ 1955. 8.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대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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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9년 6월 12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대전면(大田面) 본정(本町) 2정목(丁目)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어물상을 하고 있었다. 이명은 김완봉(金完鳳)이다.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 대전 지역에서도 3월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3월 3일에는 소규모 만세시위가, 3월 12일 천도교인 중심의 만세시위가 있었지만,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3월 16일에는 양사길(梁士吉)의 주도로 인동시장 가마니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처럼 대전지역에서도 꾸준히 만세운동이 전개되면서 대규모 시위운동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3월 중순경 당시 사립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이던 김정철(金正哲)은 대전군 대전면으로 내려와, 본정 2정목에 사는 김창규(金昌圭)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만세시위를 권유하였다. 이에 김창규는 3월 27일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련(曺相連) 등 동지들과 대전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시위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오후 3시경 대전면 대전시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미리 준비했던 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나누어 주었다. 이어 김창규의 주창에 따라 시위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시장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은 일본 헌병과 병력이 출동하여 강압적인 해산 작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5시 경까지 약 2시간에 걸쳐 계속되었다. 만세시위의 분위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져 28일에도 오후부터 대전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김정철·김창규 등과 함께 시위 주도자로 일본 군경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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