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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禮元

禮元

1885. 9. 2 ~ 1960.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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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禮元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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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85년 9월 2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선식(金善植)을 사용하였다. 1919년 서산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1919년 4월 4일 면장 이인정은 면사무소에 모인 주민들에게 “오늘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만세시위를 위한 것이다”라고 연설하였다. 이날 도로보수에 나섰다가 면장의 주장에 공감하여 시위에 참여하였다. 면사무소에 모인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나서 면사무소로부터 7㎞ 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시위에 합류하였고,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천의주재소의 지원 요청으로 파견된 당진경찰서 경찰들이 발포하면서 부상자가 생기자 시위대는 천의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경찰을 구타하였다.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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