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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金榮昊

187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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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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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신천(信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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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신천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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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신천면(信川面) 무정리(武井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에도 신천면에 거주하며 곡물상을 하고 있었다. 3월 27일 신천군 신천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신천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만세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1919년 3월 11일 경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3월 15일 초리면(草里面), 3월 19일 용진면(用珍面)으로 확산되었다. 신천면에서는 곽영선(郭永善), 곽현종(郭賢鍾), 백영서(白永瑞) 등 기독교인과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3월 27일 오후 1시 신천면 무정리(武井里), 사직리(社稷里) 주민 등 200여 명과 함께 신천면 장터에서 만세시위에 나섰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대를 따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신천헌병분견소 헌병과 파견 군인을 출동시켰다. 이때 30명을 붙잡고 시위 군중도 해산시켰으나 시위대는 10~30명씩 모여 밤까지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날 만세시위 참여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면서 “조선은 반만년 역사를 가지고 2천만 인민을 보유한 나라이며 또 금수강산의 나라이다. 또한 조선민족이 당당한 정의의 도(道)로써 독립만세를 부르짖는데 이것을 부정하는 일제 당국은 세계에 부끄러움이 없느냐. 따라서 본인의 징역형은 법률을 오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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