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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金永夏

1897. 10. 1 ~ 1978.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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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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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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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양성면
  • · 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0월 1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양성면(陽城面) 도곡리(桃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1일과 2일 안성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양성면에서는 이희봉(李熙鳳)이 “각지에서 만세를 부르니 오늘 저녁 모여 일제히 만세를 부르자”고 주도하며 앞장섰다. 이에 동조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로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후 양성면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연대하여 만세시위를 하자는 제안을 받고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시위군중과 함께 양성경찰관주재소, 양성우편소, 양성면사무소가 있는 양성면 동항리에 도착한 뒤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양성면 석화리(石花里) 산에서 주재소가 불타는 것을 목격하였다. 4월 2일 새벽 다시 원곡면(元谷面)의 면사무소로 몰려가 서류를 불태웠다. 일제는 이틀에 거친 격렬한 만세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군 25명을 경찰에 지원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피신하였으나 헌병대의 수색 과정에서 붙잡혔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건조물 소훼, 소요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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