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瑢
在瑢1907. 8. 1 ~ 1934. 3.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 · 독서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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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과역면(過驛面) 과역리(過驛里) 출신이다. 1920년대 후반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이하 전남사범학교(全南師範學校)) 재학 중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9년 7월 강달모(姜達模)·강문범(姜文範)·김재용(金在瑢)·박노기(朴魯淇) 등 전남사범학교 교우들과 함께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장재성(張載性)과 만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장재성은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결성하였으며, 1929년에는 분산되어 있던 광주의 학생운동 조직을 독서회로 개편하여 중앙부를 설치하고 이 지역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광주지역 각 학교 독서회는 명칭만으로는 학생들의 교양 모임처럼 보이지만.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가 되고자 하였던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격을 띠었다. 독서회 출신으로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한일 기차 통학생들의 충돌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로부터 행패를 당하자, 이를 목격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항의하면서 난투극으로 번졌다. 이튿날에도 한일 학생들간에 충돌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항쟁은 11월 3일에 일어났다. 이날은 일제의 소위 4대 명절의 하나인 명치절(明治節)이자, 음력으로 10월 3일이어서 우리의 개천절(開天節)이기도 하였다. 시위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경찰과 소방대의 저지를 뚫고 교가를 부르며 광주 시내 중심지로 행진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와 자진 해산하였는데, 일제 경찰은 시위 참여 학생 70여 명을 붙잡아갔다. 이날 붙잡히지 않고 검거된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2차 시위를 주도하였다. 두 번째 대규모 시위는 11월 12일에 있었다. 학생들은 “구속 학생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1929년 11월 3일과 12일에 있었던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930년 3월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후 이른바 ‘독서회사건’에 포함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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