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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喆

鍾喆

1888. 12. 12 ~ 1941. 3. 1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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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월성(月城)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월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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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경상북도 월성(月城, 현 경주시(慶州市)) 출신이다. 1888년 12월 12일에 태어났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시작으로, 1928년까지 주로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다. 1919년 만세 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펑텐(奉天, 현 선양)으로 갔다. 그 곳에서 송두환(宋斗煥)·최해규(崔海奎)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결사인 의용단에 가입하였다. 의용단원이 된 후 경상남북도와 남부지역의 4개 도(道)에서 독립운동 자금, 즉 군자금 모집의 임무를 명령받았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각종 임시정부 문서와 무기를 수령한 뒤 국내로 몰래 들어왔다. 상하이를 다녀온 송두환은 최해규로 하여금 만주에서 확보해온 권총과 실탄을 갖고 자금 모집에 나섰다. 먼저 경남 합천의 정달락(鄭達洛)과 의령(宜寧)의 남정구(南廷九)를 대상으로 하였다. 1920년 12월초 경주 출신 정내영이 이들을 찾아 자금을 내놓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에 송두환의 명을 받고 김봉규와 함께 권총으로 무장하고서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 정달락은 40원을 내놓았다. 12월 8일 의령 남정구 집에 도착하였으나, 하인이 시간을 끄는 동안 남정구의 계교와 밀고로 의령경찰서 신촌주재소 경찰이 출동하였고, 이 바람에 김봉규와 함께 붙잡혔다. 남정구의 집에서 연행되던 길에 인가가 없는 산길에 이르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내 3발을 쏘았다. 일본인 순사가 즉사하였고, 김봉규와 몸싸움을 벌이던 한인 순사도 중상을 입었다. 대구를 거쳐 국외로 탈출하여 다시 상하이로 가서 김원봉(金元鳳) 등이 결성한 의열단(義烈團)에 들어가, 1928년까지 상하이·만주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사망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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