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洪斌
洪斌미상 ~ 1921. 8.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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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북도 창성(昌城)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4월 1일 창성군(昌城郡) 읍내에서 기독교와 천도교 간부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창성의 만세시위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밀지를 받은 창성교회(昌城敎會) 장로 강제희(康濟羲)가 준비하고 있었다. 4월 1일 강제희는 아침 9시 50분 헌병 분대장에게 통고문을 보낸 뒤, 읍내와 각 면에서 모인 군중 2천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 후 창성 만세시위운동의 주도자인 강제희 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갔다. 이후 1919년 11월부터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성군 연통제(聯通制)에 참여하였는데, 1920년 1월 연통제 창성(昌城) 군감(郡監)에 취임한 강제희와 함께 활동하였다. 창성군 임시군청은 창성읍에서 압록강을 건너 90리 거리인 당시 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가 있던 콴뎬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 두어졌다. 이곳에서 국내를 연결하여 인물이 오가고 연통제 군(郡)·면(面) 조직을 편성하기도 하였다. 1920년 7월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제의 창성군 장서(掌書)로 임명되었다. 임시정부의 명령과 공문 전달, 구국재정단원(救國財政團員)의 모집, 군자금의 수합과 납부, 독립운동에 필요한 정보통신 연락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1년 7월에 임시정부로부터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징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연통제의 창성군 장서 신용철(申容澈)·강리달(姜利達) 등과 함께 국내로 밀파되었다. 창성군 장서들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밤에 창성군 각 면에 출장하여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정령을 전달하며 군자금 징수에 나섰다. 1921년 8월 12일 무사히 임무를 마친 후 동지들과 함께 연통제 창성군 임시군청이 있는 콴뎬현(寬甸縣) 향로구로 귀환하던 도중, 압록강변에서 일제 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도강(渡江)하다가 익사하였다. 1921년 10월 20일 임시정부는 고인의 민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도식(追悼式)을 개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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