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珏
鎭珏1894. 10. 27 ~ 1926. 5.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한중호조총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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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10월 27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마산면(馬山面) 원동동(院東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정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5일 정주 읍내에서 예수교인과 천도교인이 연합하여 읍내를 순회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3월 31일 정주 장날에 또 다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읍내 장터에서 군중 수백 명을 모아놓고 일제의 침략을 통렬히 비난하고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태형을 받고, 일주일만에 풀려났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경위대 경호 업무를 맡았다. 1921년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기자가 되어 「구심론」, 「국치일의 해설」 등의 논설을 게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1년 박은식(朴殷植)이 중국인 린저펑(林澤豊)의 지원으로 항일선전을 목적으로 『사민보(四民報)』를 발간하게 되자, 박시창(朴始昌)·박경산(朴景山)·황훈(黃勳)·이영운(李英雲)·최중호(崔重鎬)·박태하(朴泰河) 등과 함께 편집과 발행에 참여하였다. 린저펑은 당시 상하이 공동조계 평가(平街) 261호에 거주하는 광둥(廣東)인 부호로 박은식과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다. 1921년 3월 한·중 양국인의 친선과 공동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가 창사(長沙)에서 창설되었다. 같은 해 4월에는 상하이에서, 이어서 청두(成都)·한커우(漢口) 등에 차례대로 설립되었다. 8월에는 중국 각 성에 있는 한중호조사를 연합하여 한중호조총사를 상하이에 설립하였다. 이때 문서과(文書科) 간사에 임명되어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독립신문』의 선전 보급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서 항저우(杭州)로 파견되었다. 항저우도서관에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일관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3년 동안 수집해놓은 자료를 토대로 저술에 전념하여 『고려사가(高麗詞歌)』 등의 저술을 남겼으나 완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26년 5월 27일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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