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준
金一焌1882. 11. 6 ~ 1942. 4.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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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11월 6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동면(東面) 노상리(路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일준(金一濬)이다. 1907년 4월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 등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평북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회원이 되기 위해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하였다. 신민회는 국권을 회복하여 자유 독립국을 세우기로 하고 이전에 주창된 입헌군주제를 탈피하여 공화정을 추구하였다. 국권회복 방법으로 실력 양성을 가장 우선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에 단체 이름을 신민(新民)이라 하였다. 즉 신민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며 신사상, 신윤리, 신학술, 신모범, 신개혁을 내세웠다. 신민회는 총본부 산하에 감독부(1도 1개소), 총감소(總監所, 5군 이상 합함), 군감소(郡監所, 1군 1개소), 반(班)의 종적인 형태로 조직을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구국운동, 계몽강연, 서적·잡지 출판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독립군 양성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신민회는 일제가 조직한 ‘105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일본 경찰이 1910년 12월 안명근의 ‘안악사건’을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 사건으로 조작하여, 1911년 9월 신민회 평북지회 회원을 비롯해 전국의 계몽운동가 700여 명을 투옥시킬 때에 함께 옥고를 치렀다. 그 뒤 동료 104명과 함께 기소되어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13년 3월 20일 무죄를 받았고, 같은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이때까지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42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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