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浩
正浩미상 ~ 1925. 2. 30
관련 단체
- · 독립군 의용군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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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정확한 출생시기나 출신지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이 없으며, 어느 시기에 만주지역으로 이주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지에 대한 사료도 찾아볼 수 없다. 1920년대 초 만주 콴뎬현(寬甸縣)에서 의용군 대장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경술국치를 전후로 만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일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독립군 세력을 키워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청산리전투·봉오동전투에서의 승리를 비롯한 독립군 세력의 확대는 일제의 경계대상이 되었다. 이에 일제는 1920년 후반부터 중국 마적을 이용하여 ‘훈춘사건’을 일으켜 간도지역 한인을 대량 학살하는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 군경에게 독립군의 소식을 제공한 중국인들에 의해 행적이 발각되는 경우가 있었다. 콴뎬현에서 의용군 대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대황구(大荒溝)에서 상등병 김찬용(金贊龍)과 같이 일본 경찰에게 한인의 소식을 넘기는 중국인 2명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은 최성주(崔成柱)의 밀고로 일경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일경이 안둥도윤아문(安東道尹衙門)과 교섭하게 되었다. 이에 중국군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1925년 (음)2월 경에 군대 1개 연대, 보위단(保衛團)과 경찰 등 300여 명을 파견하여 하루하(下漏河)를 중심으로 독립군 색출 작전에 나섰다. 이때 중국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다음 달 초, 사복을 입고 초황구(草荒溝)로 임무 수행을 가던 중 토군(土軍)에게 발각되어 교전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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