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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龍

正

1906 ~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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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正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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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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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복단(光復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90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출생지와 성장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언제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는지도 사료를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 만주로 망명한 이후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만주지역에서는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이 전개되었다. 일찍이 이주하여 정착한 한인(韓人)사회를 기반으로 독립운동단체와 독립군단들이 조직되었다. 옌지(延吉)·훈춘(琿春)·왕칭(汪清) 등 북간도지역에서는 국민회·군정서·군무도독부·신민단·의군단 등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북간도에서 활발하게 무장투쟁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연해주로부터의 무기 구입이 용이하였다는 점이 하나의 요인이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광복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광복단은 1919년 9월 김성윤(金聖倫)·김성극(金聖極)·홍두극(洪斗極)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결성 초기의 세력은 미약하였지만, 추후 정명단(正名團)·오명단(五名團)·오숭단(五崇團)·보황단(保皇團)과 같은 군소 독립군단들의 규합으로 점차 세력이 강화되면서 1920년대 들어서자 일정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초기 단장은 최진동[(崔振東)·최명록(崔明祿)]이었고, 이듬해 1월부터 김성극이 단장을 맡았다. 근거지는 왕칭현이었다. 이후 이범윤(李範允)의 대한광복단과 통합하면서 무장세력이 한층 확장되었다. 국내외에 분단을 설치하고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으며,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도 기여하였다. 무장투쟁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금의 확보를 위한 체제의 조직이다. 광복단은 국내외에 분·지단을 설치하였고, 본부-분단-지단으로 운영하는 체제였다. 분단은 9개가 조직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실체가 확인되는 분단은 안투현(安圖縣) 분단과 갑산(甲山)분단이다. 안투현분단은 안투현 내도산(內島山)에 있었으며, 이승국(李昇國)이 분단장이었다. 광복단 설립 초기부터 가입하여, 조직이 체계화되면서 지단원으로 군자금 모집활동 등을 하였다. 1920년경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가, 1920년 사망한 것으로 자료에 나타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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