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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德

在德

1893. 9. 2 ~ 198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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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在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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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국민회 청년회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한인자위단 정의부
  • · 국민부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3년 9월 2일 평안남도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구(金球)·김암(金岩)·김호(金豪)를 사용하였고, 호는 백송(白松)이다. 처는 서씨(徐氏)이며, 종교는 예수교 장로파이다. 평양 숭실중학교 출신으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해 청년회(靑年會)를 조직하여 평북 철산(鐵山)의 장재순(張在淳), 평양의 전정목(全鼎穆) 등 회원 70여명과 함께 활동하였다. 같은 해 평양의 공성단원 이경선(李慶善)·김암사(金岩事)과 함께 독립신문과 국민신문, 경고문 등을 배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 수령증을 인쇄하여 모집원에게 교부하였다. 같은 해 8월 하순에는 옌지(延吉) 화전사(樺田社)에 국민회 동부지방총회(東部地方總會)가 설치되었는데, 국민회 총회장으로부터 임시유세원(臨時遊說員)으로 지목되었다. 1919년 이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책으로서 군자금 모금을 위해 평양에 들어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상하이로 도주하였다. 이후 만주 옌지 쌍하진(雙河鎭)에서 한인자위단장(韓人自衛團長)을 맡았다. 1920년에는 김정목(金鼎穆)·김순일(金順一) 등과 안창호에게 국내에 선전대(宣傳隊) 조직을 제안하였고, 흥사단 활동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같은 시기 임시정부 교통사무국(交通事務局) 평양지국 통신원(通信員)으로도 활동하였다. 1921년 9월 20일 경에는 상하이를 거쳐 웨이하이웨이(威海衛)로 가서 교통국과 연계를 시도하였다. 일제의 자료에 따르면, 1930년경 지린(吉林)을 중심으로 정의부 간부, 국민부 경무과장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의열단 활동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1934년 4월에는 지린 군부가 조직한 길림조선인협진회(吉林朝鮮人協進會)에 귀순하여, 지린성(吉林省) 영길현(永吉縣) 제6구 쌍하진(雙河鎭)에서 농사를 지었다. 광복 이후 1981년 7월 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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