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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麟聲

聲

1896. 4. 23 ~ 194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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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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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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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임시위생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4월 23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상수구리(上水口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인선(金仁善)을 사용하였다. 부친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계 지도자로 활동한 김이직(金理直)이다. 김이직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직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5년 부친을 찾아 연해주로 갔는데, 당시 김이직은 니콜리스크 재류한인민단 초대단장, 재노령국민회의 상설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부친을 따라 독립운동에 합류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연해주의 한인들도 3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모여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러시아 당국과 러시아 주재 11개국 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보내고 만세시위 행진을 벌였다. 일제의 항의를 받은 러시아 측의 제지로 시위대가 해산되었지만 이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여름 니콜리스크와 부근의 한인마을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그 해 9월 부친 김이직은 엄주필(嚴周珌)과 임시위생회(臨時衛生會)를 설립하였다. 이 위생회에 참여해 세브란스병원 출신 의사 나성오(羅成五)와 함께 콜레라 퇴치를 위해 힘썼다. 의료진이 부족했기에 한인 2백 명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교육시켰고,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격리시켜 단기간에 최소한의 희생자만 내고 끝날 수 있었다. 콜레라를 퇴치한 다음 위생회 회원 2백 명을 인근의 청년회와 연계시켜 독립운동 단체로 조직화하였다. 1920년 4월 일본군이 한인 민족운동자들을 대상으로 만행을 자행했던 바, ‘4월 참변’으로 불리는 이 만행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崔才亨)을 비롯해, 부친 김이직·엄주필·황경섭(黃景燮) 등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계 지도자들이 희생되었다. 부친이 사망한 후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일시 피신했다가, 1922년 연해주로 돌아왔다. 1923년 일제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연해주를 떠나, 이후 만주와 러시아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수행하다가 1944년 8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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