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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

金鐵中

1883. 3. 12 ~ 1962. 5. 3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철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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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동아일보사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1926년 동아일보 필화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83년 3월 12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임피면(臨陂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김성수(金性洙)·송진우(宋鎭禹) 등과 인연을 맺고 『동아일보(東亞日報)』 기자와 발행인 등을 맡았다. 1926년 『동아일보』 편집 겸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민족주의적 기사를 게재하였다는 이유로 두 차례 고초를 겪었다. 1926년 3월 3·1운동 7주년을 맞아 국제농민조합 본부가 보낸 「국제농민본부(國際農民本部)로부터 조선농민에게 본사를 통하여 전하는 글월」을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다. 이 글에는 3·1운동을 기념하고 독립에 동감을 표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오늘 귀 국민의 제7회의 슬픈 기념일을 당하여 국제농민본부는 세계 40개국의 조직된 농민단체를 대표하여 가장 깊은 동지로서의 동정을 농업국민인 조선 동포에게 드리노라. 이 위대한 날의 기념은 영원히 조선의 농민에게 그들의 역사적인 국민적 의무를 일깨울 것으로 믿으며, 자유를 위하여 죽은 이에게 영원한 영광이 있을지어다.(이하 생략)”라는 신문기사를 접한 일제는 “조선독립운동을 추억시킴과 아울러, 은근히 독립운동을 선동하고 치안을 방해했다”라며 이른바 신문지법 위반으로 금고 4월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이 일로 『동아일보』 는 44일간 정간되었다. 일제의 무단적인 처사에 항의하며 상고를 신청한 후 재판을 이어가던 중 또 다시 ‘동아일보 필화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1926년 8월 『동아일보』의 「횡설수설(橫說竪說)」란에 최원순(崔元淳)이 쓴 “주의자(主義者)는 검거, 언론기관은 정지가 아니면 금지 (중략) 간판만은 문화정치”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필화사건으로 또다시 금고 4월을 받아 총 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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