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金昶熙1906. 9. 1 ~ 1946. 6.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봉화청년동맹
- · 신간회 봉화지회
- · 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적색농민조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06년 9월 1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물야면(物野面) 북지리(北枝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사립 대성학원 3학년을 수료한 이후 농업에 종사하다가 봉화청년동맹(奉化靑年同盟)과 신간회(新幹會)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황윤경(黃潤慶)·권상창(權相昶)·권우섭(權宇燮)·김동수(金東秀)·김병윤(金秉潤) 등과 함께 봉화청년동맹(奉化靑年同盟)을 결성하였다. 이 동맹에는 서무재정부·문화교양부·조직연락부·조사연구부·소년부를 설치했는데, 문화교양부장을 맡았다. 같은 해 5월 10일 개최된 봉화청년동맹 확대위원회에서 조직연락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29년 1월 신간회(新幹會) 봉화지회에 가입하여 집행위원 겸 상무간사로 활동하였다. 1930년 9월, 서울에서 신간회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면서 대표회원을 선정하여 보고할 것을 각 지회에 독촉할 때, 신간회 봉화지회 대표회원으로 선정되었다. 1932년 2월 김차을(金次乙)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3월 황윤경의 제안에 따라 봉화군이 농촌지역이므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농민운동에 주력할 것에 합의하며 비밀리에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이때 황윤경을 책임자로 하고 황윤경·김차을과 함께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들은 ‘뉴스’라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토의를 통해 농민을 수양한다는 것을 표방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32년 5월 권우섭·황윤경·권차응(權次應)과 회합하여 봉화군과 영주군(榮州郡) 내에 좌익운동을 지도하는 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였다. 조직 체계는 농민부, 반제부, 청년부, 연락부 4부로 구성하고, 권우섭을 대표자인 책임비서로 천거하였다. 이때 농민부 책임자로서 농민조합 지도를 맡았다. 권우섭은 반제부 책임자로서 반제동맹의 조직과 그 지도를, 권차응은 청년부 책임자로서 공산청년회 조직과 그 지도를, 황윤경은 연락부 책임자로 부근 지역 좌익단체와 연락을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동지를 모아 인원들 늘려가며 독립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32년 7월 적색농민조합사건으로 붙잡혀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3년 4월 예심이 종결되어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3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35년 3월 2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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