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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신

金昌臣

1904. 1. 14 ~ 200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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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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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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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흑색청년자유연합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904년 1월 14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해저리(海底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응수(金應壽)였으나, 1924년 5월 16일 김창신(金昌臣)으로 개명하였다. 1925년 3월 경북사범학교 강습과(講習科)를 졸업한 후 곧바로 대구의 수창공립보통학교(壽昌公立普通學校) 교사가 되었다. 1929년 8월 31일 경북 칠곡군(漆谷郡) 신동공립보통학교(新洞公立普通學校)로 전근하였다가, 1930년 5월 19일 퇴직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동아일보』 봉화지국에서 기자와 총무로 근무하였으며, 1930년 12월부터 1932년 4월까지 『중앙일보』 봉화지국을 경영하였다. 1932년 10월경부터 고향에서 미곡상(米穀商)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교직에 있을 때부터 『상호부조론』, 『아나키스트혁명』, 『근대과학과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의 조직론』, 『계급투쟁론의 오류』 등의 문헌을 읽으면서 일본제국주의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에 심취하였다. 무정부주의가 정치적으로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재산의 사유(私有)를 인정하지 않는 만인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사회의 실현을 지향하게 되었다. 귀향 후 1930년 가을 무렵부터 김중헌(金重憲)·김중렬(金重烈)·김중문(金重文)·김덕기(金德基) 등에게 무정부주의에 관해 설명하고, 이를 전파하여 이들을 동지로 규합하고 함께 비밀결사 조직을 계획하였다. 그 결과 1932년 11월 말경 위 동지들과 함께 ‘절대적으로 자유 평등한 신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비밀결사 흑색청년자유연합회(黑色靑年自由聯合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이후 『자유연합신문』, 『흑기혁명단상(黑旗革命斷想)』 등 관련 서적과 신문을 구독하면서 무정부주의 연구를 심화시켜갔다. 한편 김중문은 1933년 5월 봉화군 물야면(物野面)의 사방공사(砂防工事)에 인부로 동원된 것을 계기로 사방공사장 인부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규합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발각되어 1933년 5월 말 봉화경찰서에 붙잡혔다. “일본 국체를 변혁하고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했다” 하여 동지 5명과 함께 같은 해 7월 17일 대구지방법원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4년 4월 2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34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으며,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형기 만료일인 1936년 5월 13일을 얼마 앞둔 3월 25일에 가출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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