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형
金此炯1924. 7. 2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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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7월 28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남면(熊南面) 안민리(安民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항일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고초를 겪었다. 1943년 스무살이 되던 해에 경남 진해(鎭海)에 있는 일본군 제51해군항공창(海軍航空廠)에서 군속(軍屬)으로 근무하였다. 군속으로 일하는 동안,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동년배였던 박준기(朴準基)·김병길(金秉吉) 등 11명의 동지들을 모아 ‘일심회(一心會)’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대표를 맡아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다. 일심회는 표면적으로는 친목을 가장한 단체였으나, 사실 항일결사를 주도하겠다는 모임이었다. 연합군이 진해에 상륙할 때를 맞추어 일심회 회원들이 무장봉기하여 항공창을 점령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목표를 위해 그 준비 단계로 네 가지의 준비활동을 계획하였다. 첫째, 일제의 항공기 생산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킬 것, 둘째, 한국인 기술자의 처우개선을 주장할 것, 셋째, 일본인 노동자를 배척할 것, 넷째, 한국인 노동자의 항일투쟁의식을 고취할 것이었다. 또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자신이 근무하는 해군항공창의 항공기와 변전소를 폭파할 것을 추진하던 중, 일제에 의해 일심회의 존재가 노출되었다. 결국 1944년 1월 11일 일제에 붙잡혀 4개월 여 동안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1944년 7월 12일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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