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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金鎭瑀

1881. 7. 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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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진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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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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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달성친목회
  • · 대한광복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광복회 대구권총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1년 7월 1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남산동(南山洞)에서 김재양(金在穰)과 전주 이씨 춘옥(春玉)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분성(盆城)이다. 조선후기 대구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문인화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진만(金鎭萬)의 동생으로,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회원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5년 (음)1월 15일 서상일(徐相日)을 중심으로 한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 회원들이 국권회복을 목표로 조선국권회복단을 결성하였고, 같은 해 (음)7월 15일에는 박상진(朴尙鎭) 등이 풍기(豊基)의 광복단(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고 독립군을 양성함으로써 무력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1915년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뒤 총사령 박상진의 요청을 받고 친형 김진만 등과 함께 서우순(徐祐淳)을 협박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1915년 11월 무렵 김진만을 비롯하여 정운일·최병규 등과 함께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이장우(李章雨)·서우순 등에게 각각 5만 원, 2만 원, 3만 원을 독립군자금으로 내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군자금 모집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구의 부호들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마침 형 김진만이 그의 장인 서우순이 현금을 그 첩의 집에 숨겨 놓았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1916년 8월 박상진을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서우순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9월 4일 형인 김진만을 비롯하여 정운일·최병규 등과 함께 서우순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에 놀란 서우순의 비명소리에 집사 우도길(禹道吉)이 달려오자 일행은 총을 쏘면서 달아났다. 그들은 얼마 후 모두 붙잡혔는데, 이른바 ‘대구권총사건(大邱拳銃事件)’이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7년 6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을 받고 8년 3월의 옥고를 치렀다. 형 김진만도 징역 10년을 받고 8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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