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보
金仲甫1889 ~ 1925. 6.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희천서 고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출신이다. 1924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36세였던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1889년 생으로 추정된다. 1923년 9월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조직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희천의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천마산대는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의 천마산(天摩山)에 근거지를 두어 천마대(天馬隊)·천마별영(天摩別營)·철마별영(鐵馬別營) 등으로도 불렸다. 대한제국기 군인이었던 최시흥(崔時興), 최지풍(崔志豊) 등이 1919년 12월 조직한 항일무장단체이다. 500여 명의 단원으로 일제 경찰서,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 공격, 밀정 처단,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펼치다가, 1922년 최시흥 등이 체포되면서 국내 활동이 중단되었다. 1922년 여름경 최시흥의 부하인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조준용(趙俊龍) 등이 결성한 비밀결사 독립청년단에 가입하였다. 30여 명의 독립청년단 단원들은 1923년 9월 17일에서 18일 밤과 9월 21일에 명문동에 있는 창참경찰관주재소(倉站警察官駐在所), 북면사무소(北面事務所)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임성섭(任成涉) 등과 함께 직접 주재소에 불을 질렀다. 이들은 먼저 전화선을 끊어 통신을 단절한 뒤 여러 곳에 불을 놓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일제 경찰과 맹렬한 교전 끝에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서너 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경찰관주재소 등을 불태우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희천경찰서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일부 단원은 산속에서 사살되었고, 관련자 다수가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방화, 살인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동지 26명과 함께 1923년 12월 28일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5년이 확정되었다. 당시 희천경찰서에서는 이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극심한 고문을 가하여, ‘희천서 고문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고문 과정에서 사망한 단원도 있었고, 고문 때문에 공판이 계속 연기되기도 하였다. 구속된 단원들과 함께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하고 고통을 호소하여, 결국 일반 방청을 금지하고 법정에서 나체로 몸을 검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지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폐렴이 발생하였다. 변호사 김형숙(金亨淑)이 병원비를 전담하여 평양 자혜의원(慈惠醫院)에 입원까지 하였다. 1925년 6월 4일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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