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金俊喆1900 ~ 1928. 12.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옥구농민항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미면(米面) 미룡리(米龍里, 현 군산시 미룡동)출신이다. 1928년 당시 28세였던 것으로 보아 1900년 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 중반 옥구 지역에서 농민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6년 12월 17일 전북 익산(益山)의 이리(裡里)청년회관에서 ‘전북청년연맹’·‘전북노동연맹’·‘10월당’·‘민중운동자동맹’ 등 4대 단체가 위원연합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4개 단체 주최로 전북 사회운동자 신년연합간담회를 1927년 1월 16일 군산(群山)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준비위원을 선정하였다. 이때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지역 사회 운동을 시작하였다. 1927년 11월 옥구농민조합 집행위원으로 있으면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瑞穂支會)·서수청년회와 함께 옥구농민항쟁(일명 옥구소작쟁의)에 참여하였다. 이때 일본 식민농업회사인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에서 옥구지역 농민들에게 75%라는 높은 소작료를 수취하자 이에 항거하여 소작료 인하와 납부거부 투쟁 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11월 25일 서수지회 집행위원 장태성(張台成)이 체포되자, 조합원 수백 명이 임피(臨陂)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이 소작쟁의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옥구지역 농민들의 대표적인 항일농민운동이었다. 이 사건으로 조합원을 비롯한 농민 8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2월 8일 송치되었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였지만, 1928년 3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폐병에 걸려 1928년 4월 16일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집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같은 해 12월 1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장을 추서하였다. ⋮송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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