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宙魯
宙1895. 4. 8 ~ 1963. 3.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을교(선도교
- · 보천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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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95년 4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동(川前洞)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내홍(金乃洪)이다. 증산교(甑山敎)를 창도한 강일순(姜一淳)의 제자 차경석(車京石)을 교주로 한 태을교[(太乙敎), 일명 선도교(仙道敎), 후에 보천교(普天敎)]에 가입하여 1920년대 초 민족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증산교는 강일순이 신도들에게 읊게 한 주문인 ‘태을주(太乙呪)’가 ‘흠치 흠치’로 시작하는 데서 흠치교(吽哆敎)라고도 불렸다. 한말 동학 사상에 기원을 두어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09년 강일순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 고씨(高氏)와 제자 차경석·김형렬(金亨烈) 등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 중 태을교 계통의 조직에서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차경석 아래에 60방주(方主)라는 고문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또 각각 30원-15원-10원-5원의 치성비(致誠費)를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전북 정읍(井邑)의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도록 하였다. 당시 교도들 사이에서 이 독립운동 자금을 ‘고폐(告幣)’라는 은어로 불렀다. 교도들은 “1924년이 되면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鷄龍山)에 도읍하고 황제에 취임할 것인데, 이때를 기하여 국외의 독립운동단체와 호응하여 일제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개시하여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즉 1924년까지 일본은 중국 또는 미국과 개전하게 될 것이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국외 독립운동 기관과 연락하여 1919년 만세운동 때처럼 일제히 일어나면 독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망 아래 신도들을 조직하고 운동자금의 모집에 노력하였다. 1920년 (음)7월경 천전동 뒷산에서 김술로(金述魯) 등과 함께 입도제(入道祭)를 치르고 일심동체(一心同體)를 맹서하여 태을교 교도가 되었다. 김응로(金應魯)가 이끄는 8인조에 가입하여 치성비 명목의 운동자금을 내고,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했으나 국권회복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신도들을 모집하고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4월경 여러 신도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여, 같은 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기까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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