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
金宗輝1891. 10. 11 ~ 1922. 1.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을교(선도교
- · 보천교)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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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91년 10월 11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산운면(山雲面, 현 금성면) 수정동(水淨洞)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종교 가운데 증산교(甑山敎) 일파인 태을교(太乙敎, 일명 선도교(仙道敎), 후에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여 독립을 선전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선도교, 태을교, 보천교는 일명 흠치교(吽哆敎)라고도 불리는데, 신도들이 외는 주문이 ‘흠치 흠치(吽哆) (吽哆)’로 시작하는 데에서 기원한다. 강일순 사후 그의 제자 차경석(車京石)이 고판례(高判禮)가 조직한 선도교에서 1916년 교권을 장악하고, 핵심 인물을 배치하여 24방주(方主)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19년 태을교 교주로서 24방주제를 확대 개편하여 60방주제를 시행하였다. 60방주제는 교주 밑에 60인의 60방위 고문을 두고, 각 고문 밑에 6인조, 6인조 밑에 각 12인조, 12인조 밑에 각 8인조, 8인조 밑에 각 15인조를 두는 체계였다. 이 같은 조직 구성으로 경북 청송·안동·의성·군위 일대에서 교세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후 1922년 ‘보천교’라는 명칭으로 교단을 공개하면서부터 보천교로 불리었다. 이러한 태을교의 교세 확장에 따라 1920년 가을 자택에서 인근 산운리에 거주하던 12인조원인 김인수(金仁壽)의 권유에 따라 일심동체(一心同體) 서약을 하고 입교하여 8인조원이 되었다. 이후 하위 15인조를 조직(5명은 자신, 나머지 10명은 김인수가 권유)하는 등 종교 활동을 통한 교세 확장과 치성비(致誠費) 5원 60전을 징수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위 조원들에게는 “갑자년(甲子年, 1924년)은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에 올라 일본통치 하에서 이탈하여 조선반도를 통일하고 조선이 독립하는 해이다”라고 선전하였다. 1921년 3월 중 자택으로 일제 경찰이 잡으러 왔을 때 ‘김종휘의 사촌동생’이라고 속여 체포를 면했으나, 5월 다시 주재소의 호출을 받아 자진 출두하여 붙잡혔다. 1921년 5월 16일에 구류되어 5월 23일 기소되었다. 같은 해 7월 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검사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산입)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다, 1922년 1월 11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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