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린
金宗獜1906. 9. 2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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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1906년 9월 26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일신리(日新里)에서 태어났다. 1931년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1년 2월 28일 재만 독립군 단체 국민부(國民府)의 대원 정봉화(鄭鳳和)가 국내로 잠입하였을 때 그에게 협력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고 권총과 탄환 288발을 전달받았다. 같은 해 3월 4일 오후 9시경 형인 김종경(金宗京)과 함께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내중면(內中面) 동산동(東山洞)에 거주하는 부호 차동봉(車東鳳)의 집으로 가서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에서 왔다고 하며 군자금으로 현금 5,000원을 요구하였으나 100원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이에 차동봉에게 10일 뒤 내중면 당령동(堂嶺洞)에 있는 옥전산(玉田山)의 바위로 2,000원을 가지고 올 것을 명령하였다. 같은 달 13일에 추가로 군자금을 건네받기 위해 김종경과 함께 옥전산에 대기하다가, 내중면 주재소 순사부장이 인솔한 4명의 무장 경관대와 마주쳐 30분간 교전한 끝에 동생인 김종경만 현장에서 붙잡혔다. 권총을 지닌 채 의주군(義州郡) 고녕삭면(古寧朔面) 삼봉동(三峯洞)에 숨어있다가 21일 용암포경찰서(龍岩浦警察署) 추적경관대의 공격을 받고 붙잡혔다. 이때 경찰의 총구를 막다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소지하고 있던 권총 1정과 탄약 수십발을 압수당하였다. 1932년 12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미수’, 총포화약류취체규칙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8년 8월 10일 가출옥한 후 10월 경 김종경과 함께 만주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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