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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廷述

廷述

1869. 3. 4 ~ 195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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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廷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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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태인(泰仁)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태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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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구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구국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9년 3월 4일 전라북도 태인군(泰仁郡) 산외일변면(山外一邊面) 신배(新培)마을(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서 아버지 김영호(金永昊)와 어머니 인동 장씨 사이에 4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광국(光國), 호는 포석(圃石)이다. 유년기에 정읍군(井邑市) 칠보면(七寶面) 무성리(武城里)에서 강학하는 춘우정 김영상(金永相)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김영상은 같은 도강 김씨 일가다. 정읍군 보림면 오류리(현 태인면 오류리)로 분가했다가, 1906년 6월 스승이 무성서원(武城書院) 장의(掌議)로 최익현과 창의(倡義)에 뜻을 같이 하자 종사관으로서 가담하였다. 국권 침탈 후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종로구 적선동에 기거하였다. 1919년 10월 서울 종로구 홍파동에 사는 윤철(尹喆, 본명 윤병각)이 자택에서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원 조한호(趙漢鎬)의 지시를 받고서 한국 독립의 목적 달성을 위해 우선 목포 출신 이태훈(李泰勳)과 함께 비밀결사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동년 11월에 3인이 서울 장교동 모처에서 정읍 출신 유학규(柳學圭)에게 구국단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찬동을 얻어냈다. 유학규는 정읍군 내장면 금붕리 거주자인 유만규(柳滿圭)의 집으로 가서 구국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찬동을 받고, “독립운동 자금 5000원을 제공하라”고 권유하여 동의를 받았다. 유만규는 자택에서 3회에 걸쳐 5,000원을 유학규에게 전달하였다. 1919년 11월 중 윤철과 같이 정읍군 북면 승부리 유학규 자택으로 내려가서 4,000원을 수령한 뒤 귀경하였다. 500원은 그 해 12월 중 유학규 집에 온 이태훈에게 전달되었고, 나머지 500원은 1920년 2월에 다시 유학규 집에 내려가서 받았다. 그 뒤 이태훈과 함께 윤철의 집에 가서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하였다. 윤철은 1919년 11월과 1920년 2월에 조한호에게 4300원을 교부하여 임시정부로 전해졌다. 구국단에서는 1920년 8월 임시정부 파견원 고일정과 협력하여 독립운동자금 모금의 범위와 대상을 경상도·충청도·전라도 자산가로 확장하였고, 1921년 3월 임시정부 파견원 이영선과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공채를 받아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경기도경찰부에 탐지되어 5월 20일경 일본 경찰들에게 모두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19일 예심 종결되어 공판에 부쳐졌고, “노농회(勞農會)를 조직하여 임시정부 및 러시아 과격파와 결합을 시도했다”는 공소 사실도 있었으나 이 행적은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다. 1922년 3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있었고, 3월 18일 동 법원에서 검사의 징역 2년 구형이 있었다. 3월 30일 오전 11시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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