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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点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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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4. 28 ~ 1941. 4. 3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点順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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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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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암살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김상옥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61년 4월 28일 서울 종로(鍾路)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이명은 김성녀(金姓女)이다. 김귀현(金貴鉉)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1920년대 서울 종로구 창신동(昌信洞) 551번지에 거주하였으며, 둘째 아들 김상옥(金相玉)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상옥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 발행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보다 직접적인 투쟁 전개를 위해 의열투쟁으로 운동방향을 재정립하고 1920년 초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였다. 암살단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비롯한 총독부 고관들과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하였다.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의 한국방문 소식을 접하자, 김상옥은 이를 계기로 의거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이를 준비하다가 예비검속에 걸려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이에 김상옥은 중국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다. 암살단 사건이 불거지자, 아들 김상옥이 사용한 인쇄용 등사판과 문서 등을 파기하여 증거를 없앴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심한 고초를 치렀다. 후일 “가산이 모두 그리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고 증언한 바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집안의 재산이 김상옥의 활동 지원 자금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922년 12월 김상옥은 군자금 조달을 위한 작탄(炸彈)투쟁을 벌이기로 하고 국내로 잠입하여 삼판통(三坂通, 현 용산구 후암동 일대) 고봉근의 집에 은신하였다. 김상옥은 폭탄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편 사이토 총독 저격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답사하는 등 의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아들 김상옥의 권총을 은닉하고 필요한 때에 전달해주는 등의 역할을 하며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종로경찰서 폭파사건이 터지고 이를 조사하던 일제 경찰이 김상옥의 잠입 사실을 탐지하고 체포하려다 실패하였다. 김상옥의 행방을 찾기 위해 나선 일제 경찰로부터 친족들과 함께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김상옥은 효제동 이혜수의 집에 은거하고 있다가 1월 22일 새벽 일제 경찰 수백 명을 상대로 치열한 항쟁을 벌이다가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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