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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손

金点孫

1909. 12. 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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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점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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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연백(延白)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연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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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909년 12월 1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운산면(雲山面) 호산리(虎山里)에서 아버지 김문오(金文吾)와 어머니 함용환(咸用煥)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응섭(金應燮)이다. 1934년 12월 본적지인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장양면(長楊面) 병이무지리(竝伊武只里)로 가족 모두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어머니 함용환이 유불선 세 종교를 가미하여 ‘삼도교(三道敎)’라 하는 유사종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장남인 그를 비롯한 친족들 모두 입교한 뒤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삼도교도의 힘만으로는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의 협력을 구하고자 하였다. 1937년 2월 14일 황해도 연백군에 살고 있는 김천응(金千應)을 찾아가 “조선독립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우리들 삼도교도는 오는 3월 9일 조선총독부 앞마당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한다”는 계획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협의하였다. 실행 하루 전날인 3월 8일에는 서울 명륜정(明倫町) 4정목(丁目) 127번지에서 오방기(五方旗) 5점 등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3월 9일 시위를 위해 기다리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7년 6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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