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豊
在豊1905. 11. 15 ~ 1976. 5.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옥구농민조합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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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3) 1905년 11월 15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재풍(金在灃)이다. 1927년 옥구 지역에서 삼엽사농장(三葉社農場)의 고율의 소작료 징수에 항의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7년 10월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신문관(申文官) 등이 조직한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회(瑞穗支會)에 가입해서 활동하였다. 서수지회는 지주에게 수확량의 7할 이상을 소작료로 지불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고, 소작료 인하와 지주의 비료 비용 부담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조직되었다. 1927년 11월 20일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농장(二葉農場)에서 도작(稻作) 검사를 가혹하게 처리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태성·김행규(金幸奎) 등 농민조합 대표들이 일본인 지배인을 찾아갔다. 지배인에게 소작료 인하 등을 요구하였지만, 농민조합이 합법적인 기관도 아니고 농장에서 일하는 인사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소작료 지불 기일 하루 전인 11월 24일 지배인 태도에 격분한 지도부는 ‘이엽농장 지배인은 강도’라는 글을 작성하여 농민조합 회원과 서수리 인근 농민들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소작료 납부 거부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농민조합의 중요 인사인 장태성이 붙잡혔다. 1927년 11월 25일 장태성을 군산경찰서로 데려가기 위하여 임피경찰관출장소에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날 밤 9시경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과 함께 장태성을 탈출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곧바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회원들과 함께 출장소로 가서 순사들을 구타하고 구금 중인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이어 밤 10시경 만세를 부르며 주변 군중에게 호소하고 수서주재소를 찾아가 돌을 던지며 저항하다가 군산경찰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28년 2월 29일 군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구금자탈취죄로 징역 3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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