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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金在瑢

1912 ~ 193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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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용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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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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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려공산청년회재건함흥조직준비위원회
  • · 혁명적화학노동조합조선질소공장반조직준비위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12년 함경남도 함흥부(咸興府) 성천정(城川町)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자료에 1931년 당시 24세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호는 무계(霧溪)를 썼다. 1932년 9월 당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함흥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이른바 ‘함흥 제1차 공청(공산청년회의 약어) 사건’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인 강목구(姜穆求)로부터 풀려나면 재건 운동을 계속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관련 내용을 인계받았다. 1932년 9월 23일 풀려난 후 이전부터 함흥 일대에서 활동해 오던 최경덕(崔璟德)·차영락(車永樂) 등과 만나 함흥 내의 금속·출판·점포 등 각 부문에 공청의 기초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동시에 섬유·교통·운반 등 새로운 방면에서도 활동할 것을 협의하고 고려공산청년회재건함흥조직준비위원회(高麗共産靑年會再建咸興組織準備委員會)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는 도시부(都市部)와 농촌부(農村部)로 나누어 활동하였는데, 최경덕과 함께 도시부 책임을 맡았다. 차영락을 중심으로 기관지인 농민신문 『농신(農新)』 을 여러 차례 발행하였다. 또한 최경덕을 흥남(興南)에 파견하여 윤종청(尹琮淸)·문보련(文寶璉)·박병호(朴炳浩) 등을 동지로 규합한 결과, 조선질소비료공장(朝鮮窒素肥料工場) 내에 ‘혁명적 화학노조 조질공장반(朝窒工場班) 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와 같이 활발히 활동하던 중 1934년 5월 메이데이 격문 살포가 발단이 되어 함흥경찰서에 붙잡혔다. 1933년 3월경 도쿠모토철공소(德本鐵工所)에서 공장반(工場班)을 결성하여 그 책임을 맡아 『공장통신(工場通信)』 등을 발간하면서 활동하던 윤종청이 1934년 4월 다가올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격문을 배포한 일이 단서가 되어 이후 50~60명이 붙잡힌 것이다. 약 1년 만인 1936년 4월 동지 23명과 함께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이들은 4월 22일 예심에 회부되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일제 당국에서는 이를 ‘함흥 제2차 공청 사건’으로 취급하였다. 예심 도중에 폐결핵으로 병보석되어 제혜의원(濟惠醫院)에서 치료를 받던 중 1935년 6월 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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